[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죽기 전에 제발 잘못했다는 말 좀 들어보자"
일본으로 끌려가 굶주림과 학대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기가 이렇게 어렵냐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 7일 광주지법 403호 법정에서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두 번째 변론 기일이 열렸다.
이날 법정에는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양금덕(86) 할머니와 김재림(87) 할머니가 참석했다.
나주 출신인 양 할머니는 집도 살 수 있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일본으로 가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토구 공장에 도착한 할머니는 종일 엄격한 감시 속에서 비행기 부품에 녹을 닦아내는 일을 해야했다.
알코올이 눈에 튀어 씻으려하면 일본인 감독관이 쫓아와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가장 큰 고통은 단연 '배고픔'이었다. 밥에는 항상 썩은 감자가 한가득 박혀 있었으며 이것도 양껏 먹지는 못했다.
너무 배고파 일본인 작업자들이 먹고 버린 음식을 주워 먹으려 하면 어느새 다가와 운동화로 흙바닥에 음식을 뭉개 못 먹게 했다.
양 할머니에 이어 김 할머니가 증인석에 올라왔다. 소작농 집안 7남매 중 넷째딸이었던 김 할머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독한 알코올 냄새에도 마스크는커녕 장갑도 끼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김 할머니는 "조금만 일을 못해도 욕을 하고 손이 올라갔다"며 "어린 우리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서럽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너무나 소박하기만 했던 할머니의 소원에 방청석에 있던 시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귀국 후에도 '위안부'로 오해받을까봐 강제 동원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는 김 할머니는 "이제 90줄인 우리가 뭘 더 바라겠냐"라며 "죽기 전에 우리의 억울함에 대해 보상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야 했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7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한편 이날 열린 2차 소송은 김재림, 양영수, 심선애 할머니와 숨진 징용 피해자 오길례 씨의 동생 오철식 씨 등 4명이 2014년 2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앞서 양 할머니는 1차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으며, 미쓰비시 측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