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 1학년생인 A군은 지난 8월 쉬는 시간 급우들로부터 심한 놀림을 당했다.
친구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뒤 SNS에 올리자고 말하기도 했다.
A군은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치료까지 받았다. 그러나 가해 학생들과 그 학부모는 "친구들 간에 간지럽히는 장난을 한 것일 뿐"이라며 폭력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A군은 학기 초부터 반 학생들 일부로부터 비속어에서 따온 별명으로 불리는 등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려 온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들은 스마트폰으로 A군 몰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강제로 게임을 해서 A군이 지면 때리는 등 물리적 폭력도 지속적으로 가했다.
결국, 피해 학생 학부모가 학교에 신고해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소집됐지만 가해 학생들은 서면사과와 접촉금지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A군은 급우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현재 학교 출석을 중단한 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처럼 학교폭력 사건을 심의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대처가 미온적 수준에 머물러 피해 학생만 억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염동열 의원(새누리당)실이 최근 3년간 전국 시도교육청의 학폭위 심의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가해자 징계 중에 서면사과나 학내봉사 등 가벼운 처벌이 전체의 62%에 달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는 가해자에게 서면사과에서부터 접촉금지, 학내봉사, 사회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까지 총 9가지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가운데 퇴학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적용할 수 없어 사실상 전학이 가장 높은 수위의 제재나 다름없지만 실제 전학이나 학급교체 등 중징계가 이뤄지는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학폭위가 중징계를 기피하다 보니 피해자들의 재심청구도 크게 늘었다.
학폭위의 가해자 측 재심청구는 2013년 373건에서 지난해 408건으로 9.3% 늘어난 반면, 피해자 측 재심청구는 같은 기간 391건에서 571건으로 46% 급증했다.
물론 가해 학생을 무조건 중징계하는 게 능사가 아니며, 교육적 방법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지만 기본적으로 학폭위의 인적 구성 자체가 중징계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염동열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의 학폭위원 9만7천400여 명 가운데 학부모는 56%, 교사는 28%로 두 집단이 전체 위원의 84%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관은 11%, 법조인은 1%, 의료인은 0.2%였다.
염 의원은 13일 "학교폭력은 날로 심해지는데 가해자 조치는 단순 서면사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학폭위의 학부모 비율이 지금처럼 높으면 가해자 또는 피해자 학부모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공정한 관점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폭위에서 교사, 학부모, 법조인, 경찰 등을 동등한 비율로 구성해 객관성을 높이고 학폭위의 심의기능을 교육청으로 이관하거나 재심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을 시급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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