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심연주 기자 = 지난 1983년 2월 25일, 훈련이 한창이던 한국 상공 위에 북한군 전투기 미그-19가 출몰했다.
한국 전투기들은 즉각 요격에 나섰지만, 미그-19 전투기를 조종하던 공군은 날개를 흔들어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종사의 이름은 이웅평. 북한군 1행사단 책임비행사였다.
도대체 이웅평은 왜 전투기를 끌고 남한으로 귀순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흥미롭게도 그 시작은 라면 봉지였다.
어느 날, 이웅평은 북한 원산의 군관휴양소 근처 바닷가에서 의문의 봉지를 하나 주웠다. 그것은 바로 남한에서 떠밀려온 라면 봉지였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웅평은 봉지에 적혀 있던 문구 하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판매나 유통과정에서 변질, 훼손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웅평은 이렇게 작은 물건 하나까지도 사람들의 편의를 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이웅평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군으로 근무했지만, 퇴근한 이후에는 며칠 전에 배급받은 석탄가루를 물과 찰흙에 섞어 직접 연탄을 만들어내야만 하던 신세였다.
그는 이날 이후 공산주의가 절대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에 비행 중에 들리던 남한의 라디오에서 잠깐 맛본 '자유'도 한몫했다.
이웅평은 훗날 "인민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남조선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령이 인민을 배신했으니 내 배신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심이 서자 이웅평은 로켓 사격 훈련을 위해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미그기를 끌고 편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는 당시 전투기에 대한 보상으로 현재 가치 70억 원에 달하는 15억 6,0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또한 귀순 3개월 만에 한국의 공군복을 입고 대령까지 진급했다.
대령으로 진급한 후에도 한국 공군대학에서 교관으로 계속 활동했으며, 공군대학의 한 교수와 결혼해 가족을 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한의 보복을 심하게 걱정한 탓에 폭음한 이유로 간 기능이 저하돼 지난 2002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