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경제와 우리 사회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긴 큰 별,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 그는 마지막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22일 오전 8시 30분 서울대병원에서 구 회장의 발인이 엄수됐다.
구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중심으로 친인척 100여 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운구차 앞에 서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정말 우리 곁을 떠난 구 회장. 이런 가운데 한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그의 또 다른 선행이 뒤늦게 전해졌다.
고인이 생전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간호사들에게 LG복지재단을 통해 매달 수백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해 왔으며, 평생 생활비 지원을 약속했다는 사실이었다.
소록도는 전라남도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나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위치했던 섬으로, 지금도 한센병 환자들의 주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의 '할매 천사'로 불린 간호사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과거 한국을 찾아 약 40년간 환자들을 보살펴온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들로, 나이가 든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가 지내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2016년 간호사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보도된 신문 기사를 통해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낸다는 사실을 접했다.
이미 앞서 1996년부터 소록도병원에 복지재단을 통해 이동 차량을 꾸준히 기증해오고 있었던 구 회장은 이후 간호사들에게 직접 평생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먼저 제의, 약속했다.
간호사들이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다"며 수차례 거절했지만 구 회장이 거듭 설득해 지원받게 됐다고 22일 동아일보는 전했다.
'소록도 할매 천사들' 뿐 아니라 구 회장은 생전 신문 사회면을 꼼꼼히 읽으며 의인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그를 도울 방법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보내기도 했다.
고인은 이렇듯 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몸소 실천하려 애썼다.
지난 2015년, 구 회장은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며 'LG 의인상'을 만들었다.
이후 LG그룹은 교통사고 당한 여성을 구하려다 신호 위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고(故) 정연승 특전사 상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LG 의인상'을 수여해 오고 있다.
기업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고 있는 LG그룹. 그 토대를 닦은 구본무 회장. 반면 고인의 마지막은 소탈하고 겸손했다.
연명 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장례식은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조화·조문은 모두 사양했다.
LG그룹 측은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를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다. 구 회장의 유해는 매장 대신 화장해 나부 뿌리에 뿌리는 수목장으로 진행한다. 구 회장이 자신의 마지막 길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
수목장은 비석 등 인공구조물 없이 유해를 묻는 나무에 식별만 남기는 방식이어서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장례 규모나 절차, 비용도 간소화된다.
생전 구 회장은 평소 새와 숲 등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2013년에는 LG상록재단을 통해 자신의 호인 '화담(和談)'을 딴 명칭을 붙여 경기도 광주에 생태수목원 '화담숲'을 개장하기도 했다.
실제 구 회장은 지난해 4월 뇌 수술을 받은 뒤 요양을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구 회장의 유해는 화담숲에 묻힐 예정이다. 다만 유족의 요청에 따라 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과 생전에 가깝게 지내 발인에 참석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재벌가에서) 이렇게 간소하게 수목장을 지내는 것은 처음 보는 듯하다"고 전했다.
향년 73세, LG그룹 경영을 맡은 지 23년.
'갑질'과는 다른 행보를 걸어온 故 구본무 회장.
그런 고인의 영면 앞에 고인이 생전 이어왔던 선행과 겸손했던 삶을 기리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