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 과정에서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왔다.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사건은 바로 지난 24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메달 수여식 중에 일어났다.
메달 수여식을 중계한 SBS는 이날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에서 우승한 다카기 나나가 금메달을 받을 때 흘러나온 기미가요를 그대로 편집 없이 송출했다.
중계를 맡은 SBS 배성재 아나운서는 "일본의 국가 연주"라는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KBS와 MBC는 달랐다. 동시간대에 KBS는 광고를 송출했고, MBC는 이승훈 선수의 경기 장면을 반복해 보여줬다.
메달 수여식이 끝난 직후 논란은 거세게 일었다.
"어떻게 일본의 기미가요를 방송에서 편집 없이 내보낼 수 있냐", "기미가요의 진짜 의미는 알고 있는 거냐"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들은 "금메달 획득한 선수의 자국 국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 음소거를 할 수 없지 않냐"라는 것이다.
사실 기미가요로 인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10월 27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은 일본 배우 다케다 히로미츠가 등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기미가요를 재생했다.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과 SNS에는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비정상회담 폐지 서명운동으로까지 비화했다.
'비정상회담'에서부터 이번 SBS의 메달 수여식 중계까지. 정말 기미가요는 이렇게 큰 논란을 일으킬 만큼 문제가 되는 노래일까.
그렇다. 기미가요는 그런 노래다. 한 나라의 국가를 넘어 일본의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전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기미가요(君が代)는 문자 그대로 '군주의 치세'라는 뜻의 노래다. 가사는 매우 짧다.
"군(君)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 돌이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이 짧은 가사에 일정한 멜로디를 붙여 반복해 부르는 노래로, 여기서 '군'은 '일왕'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 일왕의 영원한 치세와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이다.
기록에 따르면 지난 1880년 무렵부터 일본에서 국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노래가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거처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침략 전쟁의 상징적인 노래로 쓰였다는 것이다.
일제는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황민화 정책을 펼치며 조선인들에게 기미가요를 강제로 외우고 부르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기미가요는 '욱일기'와 다를 바 없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요, 전범의 노래임이 자명하다.
이 때문에 지난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기미가요는 법적으로 금지됐다. 일제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패전국, 전범국인 일본에서 국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도 스스로 이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기미가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까? 아니다. 일본 극우 세력을 필두로 기미가요는 사회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침략의 야욕이 어디 가겠는가.
패망 이후에도 그 야욕은 계속해서 꿈틀거렸고, 어느 순간부터 수면 위로 떠 오르기까지 했다.
일본은 1989년 국가적으로 기미가요를 가르치는 것을 허용했고, 급기야 1999년에는 기미가요를 공식 국가로 지정했다.
이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행태다. 과거사를 합리화하며 다시 한번 야욕을 드러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을 창설하며 언제라도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기미가요는 그 야욕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로 인해 일본 안에서도 일부는 기미가요에 반발하며 제창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국수주의적, 역사 수정주의적 행태에 저항한다"는 뜻이다.
과거 류쿠왕국에서 일본으로 강제 편입된 오키나와 사람들이 대표적인 반발 집단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본과 비극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기미가요를 방송에서 송출하고, 기미가요에 반발심을 느끼지 못한다? 어불성설이다.
지난 2014년 SBS의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서는 JTBC의 기미가요 송출 문제를 두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중앙대학교 노동은 교수는 "기미가요를 트는 건 그 의미를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걸 우리가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SBS가 이번에 기미가요를 편집 없이 송출했다.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