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함성과 함께 '이상화',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관중은 이상화(스포츠토토)가 출발선에 서자 일순 조용해졌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자 관중석의 '음소거' 모드는 금세 해제됐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은 이상화가 역주를 펼치는 약 37초간 쉼 없이 이어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가 열린 18일 저녁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선 환호와 탄식, 다시 환호가 교차했다.
'세기의 대결'로까지 불린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일본)의 500m 맞대결이 열린 이날 경기장 관중석은 시작부터 만원이었다.
보통 입장권이 매진된 경기장 관중석도 '노쇼' 관중 탓에 군데군데가 비어있기 마련인데 이날은 좀처럼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평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오렌지색 옷을 맞춰 입은 네덜란드 관객이 한국 관객 다음으로 많았지만, 이날은 오렌지 관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신 태극기를 흔드는 관중이 압도적인 가운데 일장기를 들고 온 일본 관중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여자 500m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장내는 한껏 달아오른 채였다.
먼저 치러진 남자 팀 추월 8강에서 우리나라가 강호 네덜란드보다도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조 1위로 준결승에 진출한 후였다.
이윽고 여자 500m 14조에서 고다이라 나오가 레이스를 펼친 직후 이상화가 출발선에 서자 관중은 태극기와 손팻말을 흔들며 이상화에 힘을 실었다.
출발 직후 터져 나온 힘찬 응원의 목소리는 이상화가 100m 구간을 고다이라보다 0.06초 빠른 10.20초에 통과하자 굉음에 가까운 함성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상화가 코너를 돈 후 속도가 떨어지고 결국 고다이라보다 늦게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관중석은 안타까운 탄식으로 가득 찼다.
탄식의 순간은 잠시였다.
레이스를 마치고 경기복의 앞 지퍼를 내리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전광판을 올려다 본 이상화는 곧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관객들은 레이스 때보다 더 큰 함성으로 빙속여제의 역주에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남은 한 조 경기까지 끝나고 이상화의 은메달이 확정되자 관중은 다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쳤다.
관중의 환호에 화답하기 위해 트랙을 돌면서 손을 흔들던 이상화는 결국 감정이 북받친 듯 허리를 숙여 눈물을 쏟아냈다.
'이상화'를 연호하던 관중은 한목소리로 "울지마"를 외쳤다.
이상화는 태극기를 두른 채 '라이벌' 고다이라와 눈물을 쏟으며 뜨거운 포옹을 했고 나란히 트랙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했다.
시상대에서 어사화 수호랑을 받고 사진을 찍는 동안 이상화는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빙속여제가 경기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수많은 팬이 관중석을 떠나지 않고 쉼 없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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