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법조계, 정·재계 안팎에서 벌어진 성범죄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Me too' 운동을 선언하며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성범죄 피해를 직접 고발하고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러한 가운데 서 검사를 처음 인터뷰했던 '뉴스룸' 손석희 앵커가 자신의 제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한 통을 공개하며 뒤늦은 반성의 시간을 가져 눈길을 끈다.
지난 1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 앵커는 "원하는 바는 여성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라는 구절을 읽었다.
이는 하루 전 제자에게서 받은 이메일 내용 중 일부였다.
손 앵커는 편지를 보낸 제자를 "그는 가느다란 체구였지만 단단한 심성을 가졌고 늘 세상의 따뜻한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사진작가 지망생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 제가가 2013년의 어느 날 이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성범죄 피해자로서 고립된 삶을 살던 제자는 3년 뒤인 2016년 자신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도리어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까마득한 터널 안에 갇힌 피해자와 달리 가해자는 문제가 불거진 후에도 거리낌 없이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고통 속에 살던 제자는 1년 전 손 앵커를 찾아 책 한 권을 건넸다.
'참고문헌 없음'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2016년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작성한 기록서다.
책에는 "이제부터 우리의 서사를 우리가 직접 쓸 것이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의 서사를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성폭력 피해자가 된 제자는 어쩌면 이 책을 손 앵커에게 건네며 세상에 고립돼 있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 앵커는 "이를 귀담아듣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최순실 게이트'의 기폭제가 됐던 태블릿 PC가 등장한 시기와 맞물렸다.
손 앵커는 "거기(태블릿 PC)에 집중해야 했다는 변명만으로 저희는 정작 같은 시기, 봇물 터지듯 쏟아진 피해자들의 아픔을 뒤편으로 제쳐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제자로부터 받은 메일에 대한 답장은 아직 쓰지 못했다"며 그동안 성폭행 피해자를 외면했던 부끄러운 순간을 반성했다.
이는 제자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다는 다짐으로도 들렸다.
손 앵커의 '앵커브리핑'을 본 누리꾼들은 "이번 기회에 피해자 목소리가 좀 더 드러나길 바란다", "그나마 양심을 본 것 같아 큰 울림을 받았다", "함께 응원을 보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