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진민경 기자 =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비행 청소년이 되고만 한 여학생을 따뜻하게 안아준 판사가 있다.
28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는 현재 서울가정법원에 재직 중인 김귀옥 부장판사의 과거 '외치기 처분 판결' 내용이 올라왔다.
재판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김 판사의 이야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판사는 서울 서초구 법원 소년법정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기소된 A(16) 양과 마주한다.
A양은 무거운 형벌을 예상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고, 이 모습을 A양의 어머니가 눈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A양에게 김 판사가 내린 판결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김 판사는 A양에게 '처분을 하지 아니한다'는 의미의 '불처분결정'을 내렸다.
의아해하는 A양에게 김 판사는 딱 한 가지 처분만을 내렸다. 바로 '외치기 처분'이다.
김 판사는 A양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 말하라"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고 먼저 말했다.
A양이 잠시 머뭇거리자, 김 판사는 목소리를 높여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고 외쳤다.
김 판사의 말을 따라 하던 A양은 "이 세상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대목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재판을 보고 있던 A양의 어머니는 물론 방청객들까지 눈물을 훔쳤다.
해당 재판은 원래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서울가정법원 내에서 화제가 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김 판사가 이런 판결을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재판이 열리기 불과 1년 전인 2009년, A양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간호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착실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당시 남학생 여러 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A양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딸의 소식에 충격을 받은 A양 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됐다.
결국 A양은 성폭행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까지 짊어지게 됐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A양이 선택한 것은 '잘못된 길'이었다. A양은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범행을 일삼았다.
김 판사는 A양의 이런 사연을 모두 감안해 판결을 내린 것이다.
김 판사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다"면서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다"고 따뜻한 말로 A양을 다독였다.
이어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우리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 밖에 못 해주겠다"며 A양의 손을 꼭 잡았다.
한편 최근 청소년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 판사가 재판장을 '참교육' 현장으로 만든 이야기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청소년 성범죄나 학교 폭력 등 가해자가 아무리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피해자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엄중한 처벌로 다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양의 경우 '성폭행 피해자'라는 점이 범행동기가 됐다는 점에서, 엄중 처벌 보다는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준 판결이 오히려 '참교육'이 됐다는 의견이 많다.
진민경 기자 minkyeong@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