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심연주 기자 = 까맣게 어둠이 내린 밤.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평소와 똑같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왠지 모르게 집중이 안 되는 날.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최근 학교에 돌기 시작한 소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자 화장실에 '하나코'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귀신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첫 번째 화장실 문부터 차례로 똑똑 두드리며 "하나코 같이 놀자"라고 말하면 어딘가에서 스르륵 나타난다는 하나코.
심심해진 학생들은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대표로 하나코를 불러보기로 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학생은 떨리는 마음으로 불도 켜져 있지 않은 여자 화장실로 향한다.
침을 꼴깍 삼키고 차례대로 노크를 시작한 학생. 마지막 화장실 문까지 노크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괜히 오금이 저려 화장실을 빨리 벗어나려는 그 순간. 분명 아무도 없었던 화장실 세 번째 칸에서 하얀 손이 뻗어 나와 학생을 낚아챈다.
그날 이후로 화장실에 갔던 학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여기까지는 일본에서 '화장실의 하나코상'이라고 불리는 도시 괴담이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 학교에도 꼭 하나쯤은 있을 법한 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흔한 괴담에는 사실 가슴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배경은 이렇다. 어린 소녀 하나코는 평소 엄마의 학대에 시달려왔다. 소녀의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코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고 했다.
무섭게 쫓아오는 엄마를 피해 하나코가 온 곳은 바로 학교 화장실이었다. 소녀는 작은 몸을 화장실 세 번째 칸에 숨겼다.
하지만 하나코의 엄마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딸을 찾아 학교 안까지 들어와 잃어버린 딸을 애타게 찾는 척했다.
이를 본 학교 경비원이 하나코가 있는 곳을 알려줬고, 그녀는 하나코를 끌고 가 잔인하게 살해했다.
사건 이후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영혼이 학교 화장실 세 번째 칸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 모든 괴담의 골자다.
사실 해당 사연은 여러 사람이 '공포 실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아동학대와 이를 방관하는 태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다른 괴담의 탄생 배경과는 다르다.
그저 무서운 이야기로 넘길 이야기가 아닌, 한 번쯤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는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화장실에 나타난다는 어린 소녀의 영혼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른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아이들의 표상이 아닐까.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지금 당신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하나코'가 있지는 않은가.
심연주 기자 yeonju@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