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권순걸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님 '504호' 예약인가요?"
지난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인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후 5시 30분 검정색 양복에 네이비색 넥타이, 검정 안경을 착용하고 등장한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준비한 입장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 저는 매우 송구스럽고 참담스러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며 "저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서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 수행에 임했습니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본인 임기 중 이뤄낸 업적과 과거 향수를 불러올 수 있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언급하며 보수층과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듯했다.
이어 "최근 역사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라며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본인과 측근을 향한 수사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한 '보복 수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 하는 것이 이게 저의 오늘의 입장"이라는 말로 본인 입장을 정리했다.
"공직자들의 혐의를 본인에게 물어 달라"던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 고개숙여 인사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사라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의 머릿속에는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현재 서울 구치소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도 탄핵 전 측근 최순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세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했다.
2016년 10월 25일 박 전 대통령은 사전녹화 방식으로 첫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열흘 뒤인 11월 4일에 2차, 25일 뒤인 29일 3차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은 '죄송하다', '반성하고 물러나겠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처럼 알맹이 없는 이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관을 해온 김희중 전 1부속실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전 대통령의 혐의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 전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도 본인 지지층을 결집하고 검찰 수사를 보수 대 진보 프레임으로 끌고가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본인 SNS에 "현재 살아있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네명 중 두분은 이미 다녀왔고, 한분은 가 계시고 나머지 한분은 가게될 것 같습니다"라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누리꾼들도 현재 서울 구치소 '503호'에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 옆방인 '504호'로 이 전 대통령이 가게 될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제 국민들의 눈은 "나에게 물어달라"던 이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지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