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악몽을 꾸고 벌떡 일어났는데 아직도 꿈속이었어요"

인사이트newswatchngr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어둠이 짙게 내린 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만 스산히 울던 골목길이다.


정확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이다.


다급한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일단 뛰자. 골목길 사이를 누비며 정체 모를 공포스러운 존재와 추격전을 벌인다.


아뿔사, 막다른 골목이다. 꼼짝없이 잡히게 됐다. 달빛을 가리는 어둠의 그림자가 내게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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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겠구나". 눈을 질끈 감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본다.


아, 다행히도 꿈이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악몽을 되새겨본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긴 어디야,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기이한 현상.


우리는 이를 몽중몽(夢中夢)이라 부른다. 문학에서는 '덧없는 세상살이'를 뜻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몽중몽, 즉 꿈속의 꿈이 가능하다.


영화 속 장면을 잘 떠올려보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에서 자세히 묘사돼 있다.


인사이트영화 '이터널 선샤인'


'인셉션'은 꿈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타인의 잠재의식에 투입, 특정 생각을 주입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꿈속의 꿈이라는 '몽중몽',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고 의식하는 '자각몽', 다수가 하나의 꿈을 경험하는 '공유몽'이 실현됐다.


다양한 꿈의 형태는 경험적으로 증명된 바 있지만 여전히 이론적으로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다.


정신분석 전문가들에 따르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할 경우 꿈에서 잠재의식이 지나치게 혹은 기형적으로 표출되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해리 현상이다.


주로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정서적 불안감을 극도로 호소하는 사람들이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일상생활을 할 때도 꿈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수면 장애인 '과수면(Hypersomnia)'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인사이트영화 '루시드 드림'


오스트리아의 정신병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면서 본격적으로 '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전문가들이 꿈을 분석했지만 그 원인과 과정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흔히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탐구'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몽중몽 혹은 자각몽을 꾸는 방법 자체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교의 정신분석학자 덴홀름 애스피(Denholm Aspy)는 자각몽을 꾸는 방법 중 하나인 마일드(MILD, Mnemonic induction of lucid dreams)로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마일드는 쉽게 말해 꿈을 꾸겠다고 인위적으로 집중하는 방법이다.


실험 결과 자각몽을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169명의 참가자 중 53%가 자각몽에 성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사이트영화 '인셉션'


연구를 진행한 덴홀름은 "참가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꿈을 꾸며, 잠에서 깨어나고 꿈을 또렷이 기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형된 꿈의 원인이나 영향, 과정, 의미 등은 설명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과연 알 수 없는 거대한 미지의 세계인 '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한 가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아침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지금 당신이 현실이라고 믿는 이 세계가 사실 꿈속의 꿈이라면 어떤가.


혹시나 현실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당신은 인셉션을 당한 것이다.


인사이트영화 '인셉션'


꿈속에서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각몽' 꾸는 방법영화 속에서만 가능할 것만 같은 '자각몽'이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