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8년째 낮에도 밤에도 24시간 약국 문을 열어두는 약사가 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매 끼니 약국에서 챙겨야 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한 약사의 소신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지난 30일 연합뉴스TV '미니다큐-오늘'에서는 잠들지 않는 특별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김유곤 약사의 사연이 전파를 탔다.
경기도 부천시에는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질 않는 약국이 있다. 김유곤 약사는 찾아오는 손님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다.
어린 초등학교 자녀를 둔 손님에게는 "학교에서 오면 공부할 때 이거 먹으라고 해요"라며 영양 캔디 하나를 건넨다.
소소한 것도 잊지 않고 물어봐 주는 김유곤 약사의 세심함에 손님들도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급할 땐 돈도 받지 않고 약을 건넨다. 이미 얼굴을 알고 지내는 동네 주민이다 보니 서로가 끈끈한 '신뢰'로 얽혀있었다.
약사의 배려에 손님들도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가져온다. 이미 약국 냉장고에는 손님들이 가져다준 선물들로 가득 차 있다.
밤이 되면 김유곤 약사는 더욱 바빠진다. 주변 약국들은 모두 문을 닫지만, 김유곤 약사의 약국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직접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만 마음이 급해 응급조치를 묻는 전화도 줄을 잇는다. 김유곤 약사는 "어떨 때는 새벽 내내 전화가 와서 전화만 받다가 잠을 못 잔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8년 전, 김유곤 약사는 늦은 시간 찾아오는 손님들을 외면할 수 없어 24시간 약국을 시작했다.
약국 문이 닫혀 있으면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할 손님들 생각에 몸이 힘들어도 언제나 문을 열어둔다고 했다.
일이 바빠 늦은 밤에야 겨우 약국 한편에 마련된 쪽방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김유곤 약사.
그런데도 바깥에서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려오면 먹던 숟가락도 내려놓고 얼른 밖으로 뛰쳐나간다.
새벽에도 그를 찾는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잠을 자다가도 벨소리가 들리면 잠옷 바람에 밖으로 나가 약을 처방해준다.
그가 일주일에 딱 한 번 약국 문을 닫는 시간이 있다. 토요일 자정이면 그는 일주일 동안 못 본 아내와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딸들은 처음 아빠가 '심야 약국'을 한다고 했을 때 늦게까지 문을 여는 줄로만 알았지 한 달에 4번밖에 못 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서운한 마음이 컸지만 아빠의 진심을 알고 나선 이제 존경스럽기만 하다.
토요일 밤에 집으로 돌아와 일요일 오후 다시 출근 준비를 하는 아빠를 보며 딸들은 아빠를 꼭 안아주는 것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대신한다.
딸들이 주는 기운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김유곤 약사는 오늘도 활기차게 약국 문을 연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