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10년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후 엄마가 재혼하면서 점점 비뚤어지기 시작한 중학생 아들.
그런 아들이 제자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에 엄마는 미어지는 가슴에도 아들을 법정에 세웠다.
지난 22일 부산가정법원 소년재판장에 사기 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앳된 얼굴의 중학생 A군이 들어왔다. 그 뒤로 어린 3살 딸을 품에 안은 A군의 어머니 B씨가 자리했다.
이번 재판은 어머니 B씨가 법원에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를 신청하면서 열렸다.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란 비행 학생을 곧바로 법원에 알려 경찰이나 검찰 조사 없이 재판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앞서 어머니 B씨는 은행으로부터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달 전 가출한 아들 A군이 인터넷으로 중고매매 사기를 치려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계좌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A군의 방황은 새 아버지와 갈등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10년 전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동안 B씨는 홀로 A군을 키우다 재혼을 했다.
새 아버지는 A군을 살뜰히 보살피려 노력했지만, A군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아버지가 없다는 상실감에 힘들어했던 A군은 결국 가출을 하고 만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가출한 아들이 인터넷으로 사기를 치려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사실 피해자인 B씨가 용서하면 아들의 '사기 미수' 혐의는 그냥 덮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B씨는 밖에서 방황하는 아들을 바로 잡기 위해 통고제를 신청했고, A군은 잠시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생활한 뒤 법정에 서게 됐다.
가출 이후 한 달 만에 엄마와 이부 여동생을 만난 A군.
어린 여동생은 오랜만에 본 오빠가 반가웠는지 쪼르르 달려가 A군에게 안겼다.
그 모습에 천종호 부장판사는 엄벌 대신 A군에게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열번 외치게 했다. A군은 차가운 법정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을 쏟으며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이어 판사는 B씨에게도 'A야, 사랑한다'는 말을 10번 외치도록 했다. B씨가 울면서 'A야 사랑한다'고 말하자 품에 안겨 있던 어린 딸이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기도 했다.
판사는 이들 가족이 서로 안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엄숙했던 법정 안은 이들 모자의 뜨거운 포옹에 금세 눈물 바다로 변했다.
이번 재판을 담당한 천종호 부장판사는 "엄숙한 법정에서 천진난만한 여동생의 행동에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랑한다'는 말을 10번 외치게 한 것에 대해 "평소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면 의외로 갈등이 쉽게 해소되는 경우가 많아 A군 모자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A군은 가족들과 함께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A군은 6개월간 법원의 소년위탁보호위원과 연락하며 상담을 받게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