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연일 혹한의 날씨가 이어진 가운데, 강남의 한 고급빌라에서 경비원들의 난방기구 사용을 막았다는 사연이 올라와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경비원들도 최소한의 근무환경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사연을 올린 글쓴이는 평생 장사만 하다 연세가 들어 강남의 한 고급빌라에서 뒤늦게 경비원 생활을 하게 된 73세 아버지를 둔 딸이었다.
딸 A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새벽 5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한 후 하루 쉬는 방식으로 경비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력도 없고 나이까지 많은데도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아버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경비원 생활을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경비실에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난 여름 에어컨이 없어 더위를 너무 많이 탄다는 아버지 말에 A씨는 직접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자비로 에어컨을 설치하고 전기세도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대표는 에어컨 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밤새 경비실을 지켜야 하지만, 난방기라고는 겨우 발밑에 둘 수 있는 작은 난로 하나가 전부였다.
그걸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아 A씨는 냄새도 안나고 불완전 연소가 돼 안전한 전기난로를 구입해 경비실에 놓아 드렸다.
밤에 잠깐 눈을 붙일 때라도 아버지가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며칠 뒤 아버지는 전기난로 마저 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동대표가 찾아와 '전기세 많이 나와 안 된다'며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전기세가 문제라면 A씨가 내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동대표한테 괜히 찍히면 안된다. 겨울 금방 지나가니 그냥 지내겠다"고 말해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A씨는 이러한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하다못해 건물 화장실도 동파 방지를 위해 전기 라디에이터 설치를 하는데 사람이 생활하고 자는 곳에 난로 하나 사용 못 하게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아무리 경비라 하더라도 다른 집 소중한 가족이고 가장이신데, 또 연세도 많으신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화가 난다"고 적었다.
경비원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 환경은 비단 A씨 아버지 만의 일이 아니다.
올여름, 39도가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 없이 일하는 경비원들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사정을 알게 된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직접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전기세를 부담하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관리비 상승으로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거나 심지어 경비원을 하루아침에 대거 해고하는 아파트도 있어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지난 10월 경비원의 근무 환경과 고용 조건 개선을 위해 '행복한 아파트공동체를 위한 경비원 상생고용 가이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비원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청소, 택배, 주차관리, 조경 등 추가 업무를 지시할 시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근로감독 지침을 바꿔 내년 2월부터 모든 아파트에 일정 규모 이상의 경비원 휴게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권고 사항일 뿐 처벌이나 과태료 등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있는 대책이 추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