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2011년 11월 18일 밤 11시 30분께,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15층 옥상에서 떨어진 건 다름 아닌 이제 겨우 14살이 된 중학교 2학년 A양이었다.
A양에게서 유서 하나가 발견됐다. 그 안에는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 6명의 실명과 '내 편은 아무도 없다. 그냥 나 죽으면 모두가 끝이야. 이 복잡한 일들이 다 끝나'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부모는 하루아침에 딸을 잃었다. 엄마는 처음 A양이 펑펑 울면서 집에 돌아온 날을 잊지 못한다.
학년이 올라간 3월부터 A양은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같은 반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이유는 없었다.
동급생들은 필통으로 머리를 치거나 주먹으로 어깨, 팔 등을 때렸다. 책상을 엎고 서랍에 물을 부어 책을 모두 젖게 한 일도 있었다.
항의하면 할수록 욕설과 협박만 돌아왔다. 휴대전화를 숨기거나 A양이 받은 선물을 훔치는 등 오히려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두 달이 좀 지났을 때 집에 돌아온 딸은 머리가 잔뜩 헝클어지고 얼굴도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때 엄마는 A양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음날 학교를 찾아갔다. 담임 교사, 교감, 교장 등이 있는 앞에서 딸아이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담임 교사는 "싸우지 말라"며 가해자를 훈계하는 데 그쳤고, 부모에게는 "기다려 달라"고만 말했다.
세 차례나 더 학교를 찾아갔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러 11월 18일, 아침을 거르고 나간 A양은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경찰과 함께 A양 수색에 나섰다.
그때 갑자기 경찰이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며 몸을 막았다. 경찰의 등 뒤로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A양이 있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A양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딸을 떠내보내고 피해자 부모에게 또다른 지옥이 찾아왔다.
검찰이 뒤늦게 조사에 나서자 교장과 교감, 담임 교사는 변명만 늘어놨다. 교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 왜 학교 탓을 하냐"고 말했다.
가해 학생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가해자 부모들은 더 했다.
한 가해자 부모는 A양 아빠의 회사로 전화해 "당신들 칼로 찔러 죽일거야"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한 매체에 따르면 갖은 협박에 견디다 못한 A양 가족은 2012년 5월 한국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3년 뒤인 2015년 1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0부는 가해자 부모와 서울시가 A양 가족에게 1억 3백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A양이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르게 됐다. 다만 자살을 선택한 것은 A양이며, 자녀보호의 양육에 관한 일차적 책임을 부모에게 있다"며 가해자 부모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가해 학생은 모두 소년보호 처분을 받았다. 한 달 뒤인 2016년 1월 A양의 왕따를 방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담임교사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학교 폭력으로 한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왕따, 폭행 등에 대해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가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2017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학교폭력예방 관련정책의 효과성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많은 교사들이 학교 폭력과 생활지도 담당을 꺼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폭법 제14조 제3항에 따라 학교 내에는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둬야 하지만 제대로 운용되는 곳은 손에 꼽는다.
가해 및 피해 학부모와의 갈등 조정, 학생들 사안 처리 등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과정에 복잡하다 보니 교사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이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교사에게 털어 놓아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교내에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리고 있지만 이를 담당하는 교사와 학부모 등의 전문성이 부족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안 판단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에 교육 전문가들은 경찰 등 공권력과 외부 전문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학교폭력 관련 사안을 심의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