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한밤중 집으로 가는 길.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 사이를 지나며 왠지 모를 불길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깨친 유리창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날카롭게 울고 있던 그때. 누군가 당신 앞에 등장한다.
커다란 마스크 속으로 얼굴을 깊이 파묻고 있는 한 여성.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묻는다.
"나 예쁘니?"
당신이 "예쁘다"라고 대답하면, 여성은 마스크를 벗으며 다시 한번 "이래도...?"라고 묻는다.
마스크를 벗은 여성은 흉측한 얼굴을 수줍게 드러냈다. 여성의 입은 귀까지 완전히 찢어져 있었고, 당신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만일 당신이 "그래도 예쁘다"라는 내뱉는다면 후회할 것이다. 그 대답을 들은 여성은 "너도 예쁘게 만들어줄게"라며 가위로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도시 괴담 '빨간 마스크'의 내용이다.
실제 사건으로 벌어지지 않은 낭설에 불과했지만 괴담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공포 대상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점으로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며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특히나 어린이들에게는 극심한 공포로 다가왔다.
괴담에 따르면 '빨간 마스크'의 여성은 가위나 식칼, 도끼, 낫 등 흉기를 지니고 다니며 100m 거리를 3초에 주파할 정도로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녔다.
신체적인 특징도 두드러진다. 키가 2m가 넘고 피부는 핏기없는 새하얀색이며 치아도 130개가 넘어 아이를 물어 죽인다는 소문이 있었다.
'빨간 마스크' 여성에게는 두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들이 그녀의 예쁜 얼굴을 질투해 입을 가위로 찢어버렸고, 그때부터 복수심에 불타올라 사람들의 입을 찢는다는 것이 괴담의 골자다.
과연 '빨간 마스크' 괴담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난 이야기일까.
괴담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지난 1970년대 일본 기후현 미노카모 지역에서 최초로 생겨났고, 교육열이 극심한 어머니의 상(像)이 어린이들의 공포 대상인 '빨간 마스크'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지난 1978년 봄, 유난히 꽃가루가 심했던 시기에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가 유행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음산한 분위기를 낸다고 소문나며 괴담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설은 일본의 도시화 그리고 성형수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버블경제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거두며 도시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자연스럽게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의 경제력이 향상됐고, 동시에 서구적인 외모에 대한 동경 혹은 열등감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이에 성형 수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보수적인 시선으로 성형 수술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불안감, 당혹스러움이 기괴한 모습으로 도시를 배회하는 '빨간 마스크' 괴담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일본 전역을 휩쓸며 실제 경찰 수사까지 진행됐던 일본의 도시 괴담.
현지에서는 '입 찢어진 여자'라고 불리며 퍼져나갔고, 우리나라까지 넘어와 '빨간 마스크'로 이름 지어지며 지난 1993년, 2004년경 대유행한 바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이 괴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나고야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다시 한번 괴담이 유행했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