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최근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 여러 명이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이 피해 학생의 신상을 공개하고 외부 발설을 금지하는 함구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교사 성추문 파문이 일었던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항의 대자보가 붙었다.
'우리는 학교의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이 대자보는 해당 학교 학생들이 직접 작성했다.
성추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교사가 학교 측에 선처를 바란다며 청원서를 제출하자, 이를 알게 된 학생들이 성추문 교사를 엄벌하고 학생 인권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것이다.
대자보에 따르면 학생들은 이번 성추문 사건이 반복되는 동안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조사 과정에서 학교 측이 피해학생의 신상을 노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바깥으로 알리지 말라며 학생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대자보에는 "학생들에게 절대 밖으로 누설하지 말라 했다. 다음 년도에 신입생 못 받는다고, 학교 존립이 우선이지 않냐고 얘기하는데 밖으로 어떻게 알리겠는가"라고 적혀 있었다.
학생들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성추문 파문 외에도 학교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합리한 일들을 낱낱이 공개했다.
그중 올해 초 진행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 문제가 불거졌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선생님들은 다 가시고 학생회 임원들이 들어와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마치 군대와 같이 구호와 교가를 교육한다"고 밝혔다.
또 "선배와 선생님들에게 인사할 것을 강요하고, 인사하지 않으면 기숙사로 다시 불러 겁을 주며 인사를 하라 했다. 선생님들도 이를 묵인하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한 학생은 "(선배들이 들어와서) 윽박질렀다. 학교를 온 건지 군대를 온 건지 모욕적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3년 전 교사들이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일부 학생들을 불러 체벌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남자 교사들은 "교내 연애 블랙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며 남학생들을 엎드려 뻗치라고 시킨 뒤 여학생들이 지켜보게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학생들의 뺨을 때렸으며, 학생들에게 교내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뒤 '어버이날' 노래를 부르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의 인권 침해를 폭로하는 대자보가 붙자 학교 교사들은 이를 모두 떼어냈다.
페이스북 페이지 '부산 학생인권 대나무숲'에 따르면 왜 대자보를 떼어가냐는 학생들의 질문에도 교사들은 답하지 않고 대자보를 제거했다.
이후 몇몇 학생들은 포스트잇, A4용지 등에 다시금 이번 문제를 지적하며 학교 측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또 친구들의 용기 있는 결정에 응원의 메시지를 붙인 학생들도 있었다.
원성이 높아지자 학교 측은 "교장, 교감, 부장교사가 회람하기 위해 대자보를 가져갔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해당 학교는 뒤늦게 학생인권 보호 공청회 개최와 오리엔테이션 개선 등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고 수습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