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첫 월급 탄 날 엄마, 아빠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한 달에 100만원씩 적금을 부으며 착실하게 살았던 아들.
이제 겨우 19살 된 아들은 허망하게도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기계에 깔려 숨졌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들의 얼굴에 엄마는 눈물만 쏟았다.
지난 22일 한겨레는 제주의 한 음료공장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숨진 고교생 이민호(19)군의 어머니 박정숙씨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민호군은 집에서 매일 햇반과 라면을 챙겨 점심, 저녁값을 아낄 만큼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아침은 공장에서 제공하는 급식으로 해결했다.
첫 월급을 탄 이후엔 100만원 짜리 적금을 들어 3개월간 꼬박 30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월급 탔다며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대접했던 아들은 틈틈이 기름값 하시라며 아버지 용돈까지 챙길 만큼 마음 씀씀이가 깊었다.
컴퓨터 게임 디자이너가 꿈이었지만 그 흔한 노트북 하나 사지 않았다. 늦게까지 게임하다 혹시나 일에 지장이 갈까봐 일부러 참은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면 밥도 안 먹고 내내 잠만자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집에 와서 잠만 자겠냐. 그런데 그런 내색을 하나도 안 했다"고 말했다.
아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심폐소생술을 하던 의사는 어머니 박씨에게 "민호군에게 너무 무리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포기할 수 없어 "식물인간이라도 좋다.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무조건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다. 박씨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며 말을 줄였다.
앞서 지난 9일 민호군은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음료수 공장에서 실습을 하던 중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현장에는 실습생의 안전을 책임질 관리감독관이 없었고 뒤늦게 현장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뇌가 많이 손상돼 결국 사고 열흘 만에 민호 군은 숨을 거뒀다.
사건 이후 민호군이 일한 공장에 최소한의 안전 설비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점과 민호 군이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실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 여러 차례 민호군이 문제가 된 기계가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고 상부에 보고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됐다.
고등학교 현장실습생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 환경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현장실습생 사망과 관련, 학교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현장실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여기에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는 지난 20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故 이민호 군을 추모하며 현장실습제 폐지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민호군의 죽음은 특성화고교생들의 죽음과 같다"며 "이번 사건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6만여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실습생들에게는 현장 곳곳이 '세월호'"라며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특성화고교생 의견을 반영해 현장실습생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