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지난달 16일 아직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광주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던 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수거차 뒷바퀴에 치여 사망했다.
주변이 어두컴컴한 탓에 청소차 운전자는 뒤에 있던 환경미화원을 발견하지 못했고, 죽은 환경미화원 역시 미처 차량을 피하지 못했다.
2주 뒤 또다시 광주에서 기계식 덮개에 얼굴에 끼인 환경미화원이 끝내 숨을 거뒀다.
단순히 보면 안타까운 '사고'에 불과하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이는 열악한 업무환경이 불러온 예견된 참사였다.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각종 재해로 사망해 산재 신청을 낸 환경미화원은 27명에 달한다. 같은 시간 업무 중 다친 사례도 766건이다.
그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새벽 노동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래 온갖 궂은일에도 꿋꿋이 일하고 있는 이들을 더욱 눈물짓게 만든 순간을 엮어 한 환경미화원의 시선으로 정리해봤다.
1. "이른 새벽, '냄새난다'는 민원을 피해 아무도 없는 골목을 나선다"
이제 막 환갑을 넘긴 나는 환경미화원이다. 보통 어둠이 내려 앉은 밤부터 새벽 사이 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옮긴다.
일을 늦게 시작하면 출근길에 방해가 될뿐더러 쓰레기처리장 반입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낮에 일하면 "더럽다", "냄새난다" 등 코끝을 찡그리며 불만을 털어놓는 주민들 민원 때문에 여간 마음이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런 시선을 생각하면 차라리 새벽 근무가 낫다는 생각도 든다.
2. "쓰레기봉투로 삐져나온 유리 조각 때문에 오늘도 팔에 생채기가 생겼다"
간혹 깨진 유리 조각이나 못 등 날카로운 물건을 신문지에 싸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모르고 덥석 쓰레기봉투를 잡았다가 그만 유리조각에 살을 베고 말았다.
2년 전 옆 동네 환경미화원 김씨는 못에 찔려 파상풍으로 숨졌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숨진 환경미화원 중 대부분이 파상풍이나 세균성 감염 때문이라고 한다.
언제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3. "시간 내에 쓰레기를 옮기려면 청소차 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쓰레기 수거차 뒤에 매달리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주변이 어둡다 보니 운전자도 내가 탔는지 안 탔는지 확인을 못 하고 후진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일이 조수석에 탔다가 다시 내리면 시간 내에 쓰레기를 모두 옮기지 못한다.
후방 카메라를 달아주든, 해가 좀 떴을 때 일을 시키든 해야 할텐데. 결국 광주에서 환경미화원 한 명이 청소차에 치여 숨지지 않았나.
업체는 그저 "뒤에 타지 마세요"라고 말만 하고 정작 늦게 오면 시간 안지켰다고 버럭 화를 낸다.
4. "뚝뚝 떨어지는 음식물 국물에 기껏 빨아온 옷이 다 젖어버렸다"
쓰레기봉투를 머리 위로 들어 청소차에 던지다 김칫국물이 뚝뚝 흐르는 바람에 기껏 세탁해온 옷이 젖어 버렸다.
머리칼에도 잔뜩 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온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데, 이놈의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더욱 지독해졌다.
분명 옷을 갈아입고 퇴근해도 버스에 타면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코를 막을 텐데, 이를 어쩐다.
5. "쓰레기를 줍기 위해 쌩쌩 달리는 차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에 아무렇게 버린 쓰레기들은 바람에 날려 차도로 넘어가기 일쑤다. 특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꽁초를 꼭 하수구 주변에 버린다.
이를 쓸어 담으려면 쌩쌩 달리는 차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새벽엔 야광조끼를 입고 있긴 하지만 차가 없다고 속도를 내는 운전자들이 있어 매우 위험하다.
지난해 12월 광주에서 일하던 환경미화원 안씨는 새벽녘 쓰레기를 줍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6. "낙엽을 쓸다 미세먼지를 너무 많이 마셔 까만 가래가 섞여 나왔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찾아온 날에도 어김없이 거리를 청소해야 한다.
하염없이 낙엽을 쓸고 쓰레기를 줍다 보면 어느새 목이 까끌까끌하다는 걸 느낀다.
가래를 뱉어냈더니 자동차 매연에 먼지까지 가득 낀 까만 가래라 섞여 나왔다.
옆동네 업체는 환경미화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했다고 하는데, 우리 회사는 감감무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