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제주도의 한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기계에 목이 끼어 사망한 고등학생이 18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난 9일 오후 1시 50분께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음료수 공장에서 실습을 하던 故 이민호(18) 군이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가 많이 손상돼 장기부전과 심폐 정지로 사고 열흘 만인 지난 19일 숨을 거뒀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날은 민호군의 18번째 생일인 11월 23일을 나흘 앞둔 날이었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민호군의 안전과 실습을 책임질 관리자가 부재했으며, 최소한의 안전 설비조차 없었다.
또한 민호군은 자신의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실습하고 있었다.
'실습'이라는 이유로 연장 근무를 하는 것도 허다했다. 민호군의 어머니는 한 매체를 통해 아들이 종종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밥을 걸러 가며 일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 사고일지 모르나, 이는 열악한 현장실습 현장으로 내몰린 고등학생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인재(人災)'와 다름 없었다.
그런데도 공장 측은 민호군이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비단 민호군 만의 일이 아니다. 올해 1월엔 전북 LG 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홍모양이 "콜수 다 못 채웠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있던 홍양은 LG유플러스에서 현장실습을 나와 고객의 계약 해지를 막는 이른바 'SAVE'팀에서 일했다.
해당 부서는 콜센터 내부에서도 가장 업무 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홍양은 이곳에서 고객들의 욕설과 이탈을 막으라는 상사의 압박에 시달렸다.
지난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청년 역시 현장실습생이었다.
사회 진출의 꿈을 안고 현장실습 현장에 나왔지만, 죽음으로 내몰려지는 아이들.
이에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민호군을 추모하며 현장실습 폐지를 외치는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하얀 국화꽃과 함께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피켓에는 "실습하다 죽은게 왜 학생 탓입니까", "매일 12시간씩 일했던 제주 19살 실습생! 실습을 빙자한 목숨 건 노동착취"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민호군의 죽음은 특성화고교생들의 죽음과 같다"며 "이번 사건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6만여 현장실습생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실습생들에게는 현장 곳곳이 '세월호'"라며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특성화고교생 의견을 반영해 현장실습생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통해 "학생들은 산재로 목숨을 잃거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좌절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며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중단시키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