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이별님 기자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주한 미국대사에게 선물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으로 불법반출됐던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해외 각지로 퍼져있는 우리 문화재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 천재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걸작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가 이역만리 타국에 있다는 소식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장승업이 1894년에 그린 기명절지도 10폭 병풍에는 한 폭 한 폭마다 중국제 청동기와 화병, 화분에 담긴 화초, 나뭇가지들이 수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예술성을 겸비한 것은 물론 병풍 10폭이 온전하게 보존된 몇 안 되는 사례여서 문화재로써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귀한 문화재인 기명절지도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놀라운 사실은 기명절지도가 문정왕후 어보나 현종 어보처럼 한국전쟁 당시 불법 반출되거나 약탈당한 문화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명절지도는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인 새뮤얼 버거에게 선물하면서 미국으로 반출됐다.
메트로폴리탄의 기명절지도 소개란에 따르면 병풍 뒤쪽 우측에 '1964년 7월 9일,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 미국대사 새뮤얼 버거에게 선물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후 버거 대사의 가족은 기명절지도를 개인 소장하고 있다가 2014년 여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측은 2015년 한국을 주제로 한 '한국: 100년의 수집 역사' 전시회를 열어 기명절지도를 전시하기도 했다.
현재 약탈이나 불법 반출 등의 이유로 저 멀리 해외에 떠돌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는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기명절지도의 경우 한국의 대통령이 해외로 직접 반출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설령 기명절지도가 박 전 대통령의 개인 소장품일지라도 한 나라의 문화재를 일개 대사에게 선물로 줬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기명절지도의 사례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문화재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역사의식이 부재할 경우 그 나라의 문화재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 메트로폴리탄 홈페이지에서 한글로 '장승업'이라고 검색할 경우 보관 중인 기명절지도 사진을 볼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에 보관 중인 기명절지도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별님 기자 by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