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권순걸 기자 = 성폭행 기사를 접하다 보면 "적극적으로 방어하면 되지 않냐"는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성폭행 피해자가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반응할 경우 가해자가 쉽게 성폭행하지 못할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안나 묄러(Anna Möller)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들은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항능력이 마비되는 이른바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 : TI) 상태에 빠진다.
TI는 사람 등 동물이 긴장이나 공포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팀은 스톡홀름의 '강간 피해자 응급 클리닉'에서 치료받은 여성 298명을 대상으로 TI 경험과 후유증 등을 조사했다.
이 중 70%가 성폭행 당시 '상당한 정도'의 TI를 겪었다고 답했고 전체의 48%는 극심한 정도'였다고 답했다.
또 6개월 뒤 평가한 결과 성폭행 당시 TI를 겪은 피해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피해 여성보다 나중에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증후군'(PTSD)을 앓을 위험이 2.75배 컸다.
TI를 겪은 피해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심한 우울증을 앓을 위험이 3.42배 더 컸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는 성폭행 당시 피해 여성의 긴장성 부동화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묄러 박사는 "이 정보는 희생자들이 당면하게 되는 법적 상황이나 심리치료와 교육 차원에서 유용하다"면서 "나아가 이를 의대생이나 법대생 등의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