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권순걸 기자 = 추석 당일이었던 지난 4일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다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는 삼성반도체에서 80번째 직업병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숨진 고인은 이혜정(41)씨로 1995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약 3년 동안 확산과 세정 업무를 담당했다.
고인이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마스크와 방진복 등 보호 장구 없이 일했으며 이산화질소와 비소, 벤젠 등 화학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씨는 수년간 투병 끝에 결국 숨을 거뒀고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숨진 80번째 노동자가 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올해 초 방송됐던 EBS 다큐멘터리 '2017 시대탐구 청년'(이하 '청년')이 재조명되고 있다.
'청년'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부품을 만드는 공장 등에서 근무했던 청년 노동자들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히 삼성과 LG에 스마트폰 부품을 납품하는 한 공장에서 일했던 진희(29)씨의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간다.
지난해 파견업체를 통해 이 공장에서 일했던 진희씨는 밤 아홉시부터 오전 아홉시까지 12시간 근무를 한 지 4일 만에 쓰러졌다.
진희씨가 했던 일은 절삭공구가 스마트폰 몸체를 깎으면 가공을 위해 사용한 메탄올을 날리는 작업이었다.
메탄올은 독성이 강하고 인체에 해로워 보호장비가 필요했지만 공장은 이를 제공하지 않았다.
공장은 보호장비뿐만 아니라 환기시설도 없었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감독해야 할 공장은 "바쁜데 언제 다 할 거냐"며 메탄올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쓰러진 지 보름 만에 깨어난 진희씨는 그날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진희씨는 병원에서 시각장애 1급, 뇌경색 장애 4급을 판정받았다.
이렇게 진희씨처럼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실명한 청년들은 2015년부터 2년 동안 6명이나 나왔다.
이들이 일했던 업체들은 각종 핑계를 대며 피해자들에게 재활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이고 고작 100~400만원의 벌금을 냈을 뿐이다.
한 업체는 실명한 청년에게 '합의금'이라며 350만원을 준 뒤 연락을 끊기도 했다.
이렇게 스마트폰 부품 제조 공장과 반도체 공장 등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심각한 질병을 앓는 가운데 삼성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진희씨 등이 일했던 공장의 원청업체인 삼성전자는 "삼성전자는 글로벌 유수 전자회사들이 가입된 EICC(전자산업시민연대) 회원사로서 EICC에서 수립한 행동 규범을 근간으로 '삼성전자 협력사 행동규범'을 제정하고 협력사들로 하여금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협력사에 안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고자 더욱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답했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에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산재는 기업이 책임지고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며 삼성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