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광산에서 도망친 조선인 광부를 숨겨줬다가 모진 고문으로 희생된 일본인과 그런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50년간 강제동원 피해자의 삶을 기록했던 아들의 이야기가 가슴 먹먹한 감동을 안긴다.
최근 페이스북 페이지 'EBS Stroy'에는 '지식채널e'에서 방영된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사연을 재조명했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이유도 없이 끌려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삶을 꼼꼼히 기록하는 작가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비루한 삶이었지만 하야시 에이다이는 그들이 어떤 곳에서 일했고, 왜 사망했는지를 펜으로 적는다.
그의 집념을 보여주듯 집필실은 수많은 문서와 사진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공문서를 발견하면 이를 유족들에게 알리고 정확한 사건 기록을 위해 그는 가해자까지 찾아가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의 업 중 하나다.
하야시 에이다이가 기록하는 대상은 조선인 광부뿐 아니라 노동자, 특공대, 군위안부,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 학살 피해자 등 모두 일본의 참혹한 만행에 희생된 자들이다.
벌써 단행본으로만 57권. 책을 출간할 때마다 우익세력으로부터 협박 전화가 오고 심지어 암투병으로 건강까지 좋지 않지만 하야시 에이다이는 펜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까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가 관리하던 신사에 조선인 광부들이 숨어 들었다.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도망쳐나온 사람들이었다.
부모님은 이런 조선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선인의 상처를 치료하고 먹을 것을 준비했으며 아버지는 탈출을 도왔다.
이 사실이 들통나 아버지는 고등경찰에 끌려갔고 모진 고문을 당했다. 1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아버지는 '국가의 적'이 되어버렸지만 하야시 에이다이는 그 일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받들어 자신도 일제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록'을 하고 있는 것.
그가 집필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또 있다. 1945년 8월 해방을 맞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조선인 광부들이 하야시 에이다이를 찾았다.
그들이 건넨 건 '10엔'과 편지 한 장. 편지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돈은 저의 유일한 유산입니다"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쳤던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는 지난달 1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저항 정신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