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8일(토)

구두 신고 면접장 뛰어다니느라 퉁퉁 부르튼 취준생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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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8월 취업자 수가 7개월 만에 다시 20만 명대로 고꾸라졌다. 15∼29세 청년실업률은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여파에 시달리던 199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고 체감실업률도 2년 만에 가장 높았다."


13일 뉴스입니다. 새롭나요?


기사에 계속 수치가 올라옵니다. 2천674만 명…. 작년 21만2천 명…. 등등


요점은 취업자 수 증가 폭이 2013년 2월 이후 최저라고 합니다.


알 수 없는 수치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취업의 체감은 역시 청년의 몫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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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취업박람회'에 들어섭니다. 청년의 몫으로 남으라 했던 '체감'이 보란 듯이 '한 방'을 날립니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몇몇 시중 은행 이름이 적힌 팻말 뒤로 주욱~. '현장 면접'입니다. 긴 줄…. 저 뒤는 자신이 어느 줄에 섰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어디서 비슷한 모습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입시 전략 설명회'.


조금 다릅니다. 대입 설명회는 학부모들이 많은데 취업 박람회는 그렇지 않네요. 한 편 씁쓸합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 '전략'없이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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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장에 들어와도 한 은행의 취업전략 세미나장엔 앉을 자리가 없이 빼곡합니다.


"어제 올라왔어요."


아침 10시에 개막한 박람회. 한 시간여가 지난 11시 즈음. 맨 앞줄에서 표정연습을 하던 한 참석자에게 '언제 왔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입니다.


집이 광주광역시여서 하루 전 올라와 친척 집에서 자고 이날 아침 8시에 박람회장에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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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편에는 한 남녀가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남자친구의 현장 면접에 여자친구가 응원차 왔네요. 여자친구는 직장인입니다. 군대, 고무신…. 이제는 남자친구 취업하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봅니다.


점심시간이 다가옵니다. 대기 줄은 고무줄을 누가 양쪽에서 잡고 놓아주지 않는지 도통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눈치 없이 물어봤습니다.


"점심은 어떻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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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기자의 눈과 목에 걸린 기자 출입증을 한 번에 훑는 느낌이 들면서 돌아온 대답입니다.


"이거(면접) 하고 먹어야죠."


'아. 당연한 걸 물어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짜증이 날만도 한데 다들 대답하는 표정이 밝습니다. 심지어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운동선수들이 징크스가 있듯이 '혹시 면접 전에 짜증을 내면 안 돼, 안돼'하며 마음을 다잡는 느낌입니다. 점심 운운하는 기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눈웃음으로 대답하던 참석자의 마음을 생각하니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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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표정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씩 하고 웃으며 거울 한번 셀카 한번.


먹지도 않은 점심시간이 지나갑니다. 젊은이들도 지쳐갑니다. 또각구두를 벗어 봅니다. 남자들은 벌써 맨바닥에 풀썩한 지 오래. 여자들도 치맛자락을 아슬하게 접고 자리를 잡습니다.


면접 고수는 편한 신발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나중엔 편한 의자도 준비하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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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쭉 펴봅니다. 구두 뒤꿈치를 비집고 밴드가 졸린 눈 비비듯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 모습을 촬영하는 기자를 보고 있는 한 여성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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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많이 봐서 발이 그렇겠죠?"


"익숙하지 않으면 그럴 수 있죠. 뭐"


앉아서도 면접 준비는 계속입니다. 노트북, 휴대폰, 메모지…. 톡톡...토도톡...얼마나 반복을 했을까요?


화장을 고치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발을 꼼지락거려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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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위태하지만 한 손끝에 매달린 삼각김밥을 야무지게 한 입 베어 먹습니다.


회사에 다니든 안 다니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죠.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예전 교수 시절 쓴 '보노보노 찬가'에서 "빈곤은 자신이 범하지 않는 범죄로 받는 형벌과 같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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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얼마나 더 이러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


빈곤층의 고난을 언급한 것이지만, 지금. 우리 취업준비생들도 자신들도 모를 '형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요?


아님 어느 사회나 겪는 통과의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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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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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이 취업한 뒤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한 소설이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소박한 꿈과도 연관이 있는 거 같습니다.


"아이디 카드를 목에 걸고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다들 별 의미없이...(중략)...김지영 씨는 일부러 그랬다. 오피스 건물이 많은 번화가의 낮이면 회사 이름이 새겨진 도톰한 스트랩을 목에 걸고, 그 끝에 투명 케이스에 담긴 아이디 카드를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계속 마주쳤다. 김지영 씨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무리 지어 거리를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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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지어 걸으며….'


어려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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