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노름에 중독된 척하던 아버지가 사실은 독립운동 투사였다는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일까.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노름에 중독된 아버지'라는 사연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해당 사연의 주인공은 지난 1887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故 김용환 선생.
안동 일대에서 유명한 명문가의 장손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일본군이 집안 어른들을 마당에 꿇어앉게 하고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등의 패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일제의 만행에 분노한 그는 독립운동을 돕기로 마음먹고 지난 1908년 이강년 의병 부대에 참여한 이후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갖은 고초를 겪고 풀려난 그는 이후 어떤 이유에선지 노름판을 돌아다니며 집안의 가산을 탕진하는 도박꾼으로 전락했다.
실제로 김용환은 현재 시가로 200억원 상당의 재산과 전답을 도박으로 날렸다고.
또 외동딸이 시집갈 때 시댁에서 장롱을 마련하라고 준 돈 역시 도박으로 탕진해 딸이 친정 할머니가 쓰던 헌 장롱을 들고 울면서 시집을 갔다는 일화도 있다.
파락호로 전락한 장손을 본 문중의 자손들은 "집안 말아먹을 종손이 나왔다"고 혀를 찼지만 사실 그의 행동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일제에 체포돼 어려움을 겪은 후 평범한 방법으로는 독립운동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한 그가 자금조달을 위해 도박꾼 행세를 했던 것이다.
그는 도박판에서 돈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 사라진 재산에 대한 의심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재산을 만주의 독립군에게 보냈다.
이처럼 자신의 가족까지 속이며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쳤던 김용환 선생은 숨을 거둘 때도 이러한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진실을 알고 있던 동료가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고 묻자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할 필요가 있느냐"고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막대한 재산과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명예를 버려가면서 죽는 순간까지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용환 선생의 이야기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한편 그의 외동딸 김후웅은 지난 1995년 아버지 김용환을 대신해 건국 훈장을 수여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이날 김후웅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후웅이 지은 시 전문.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서씨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