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세계 각지의 전투지에 끌려갔다가 '마음의 병'에 걸린 조선인 징집자들의 의료 기록을 일본의 한 병원이 보관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14일 연합뉴스 취재에 결과 일본 지바(千葉)현 도가네(東金)시의 아사이(淺井) 병원은 태평양 전쟁 당시 전장에 있다가 정신질환을 앓은 환자 8천여명에 대한 병상일지의 복사본을 보관하고 있었다.
아사이 병원은 도쿄 중심가에서 2시간 반 가량 떨어진 지바현의 조용한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다. 병상일지는 병원 뒷마당 한켠에 위치한 창고에 빼곡히 놓여 있었다.
방대한 양의 병상일지는 아사이 도시오(淺井利勇·작고) 전 원장이 보관해 왔던 것들이다.
아사이 전 원장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정신질환을 앓는 병사들을 보낸 지바현의 고노다이(國府台)육군병원에서 근무하다 종전 후 군의 소각 명령에도 불구하고 병상일지를 몰래 숨겨 보관해 왔다.
병원이 가지고 있는 병상일지는 입원 시기별로 책으로 엮어 놓은 것만 1천권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한반도 출신으로 정신질환을 알았던 사람에 대한 병상일지는 대략 10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중 김씨 성을 가진 한 남성(A씨)의 일지에는 당시 전쟁이 강제로 전장에 끌려간 조선인 청년의 마음에 얼마만큼 큰 고통을 줬는지 잘 기록돼 있다.
1924년생 경기도 출생인 A씨는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소집돼 그해 10월 정신병 진단을 받았다.
일지에는 "밤에 갑자기 일어나 '아이고'라고 울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고 적혀있었다.
원치 않게 끌려간 군대와 전쟁의 참상이 그를 괴롭힌 것이다.
A씨는 난동을 부리며 욕실의 유리를 파손하기도 했는데, 일지에는 병원측이 그를 구속시켜 놓은 상황도 기록돼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A씨의 마음의 병은 그 뒤로 55년 더 남아있었다. 2000년 76세가 될 때까지 긴 시간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결국 병원에서 숨졌다.
A씨가 마음 속에서 치른 전쟁의 기록은 아사이 전 원장과 함께 병상일지를 연구한 시미즈 히로시(淸\水寬·81) 교수에 의해 고인의 동생에게 전달됐다.
A씨가 숨진 뒤 4년이 지난 뒤 뒤늦게 형의 죽음을 알게 된 한국 거주 동생이 시미즈 교수에게 부탁해 진료 기록의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것이다.
시미즈 교수는 "A씨의 모친은 아들의 안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며 "진료 기록을 보고서로 정리해 A씨의 동생에게 보내줬지만, 유족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를 읽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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