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지난 7월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던 20년차 베테랑 집배원 故 원영호씨가 끝내 사망했다.
당시 그는 안양지역이 신도시로 바뀌면서 물량이 급증했지만 적정 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며 고충을 토로했었다.
집배 노조는 진상 조사를 통해 이 부분을 명명백백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며 집배원의 장시간 중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 2월에는 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소속 집배원 조모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동맥경화였다.
동료들은 모두 "과로가 사망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조씨는 사망 전날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해 일을 했다.
4달 후인 지난 6월 아산우체국 소속 곽모씨도 집에서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곽씨는 대통령 선거 일정에 맞춰 우편물을 배달하느라 밤늦도록 퇴근하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같은 달 또 한 번 집배원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경기도 가평우체국 소속 용모씨는 전날 폭우를 뚫고 우편물을 나르다가 다음날 휴게실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경북 청송 현동우체국 소속 배모씨 역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날 우편물을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그에게는 이제 막 3살이 된 어린 아들이 있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올해 사망한 집배원은 9명에 달한다. 여기에 위탁택배원과 회계원까지 포함하면 총 12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 중 5명이 과로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과로사 추정 집배원도 5명으로 집계됐다.
그들의 죽음 뒤에는 고질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과도한 업무량과 장시간 노동이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집배원은 거의 10시간이 넘는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보통 오전 5시~7시 사이에 출근하는 집배원은 분류작업, 배달 등을 마치면 오후 5시쯤 우체국으로 복귀한다.
이후 다음날 우편물 분류 작업 등 잔업을 마치고 나면 빨라야 저녁 7시, 늦으면 밤 9시가 되어서야 퇴근하기 일쑤다.
그동안 정해진 식사 시간을 지키는 집배원은 거의 없다. 시간 안에 배달을 마치려면 점심시간 1시간은 사치에 불과하다.
선거철이나 명절이 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1천건이 넘는 우편물을 들고 하루 평균 40km, 신도시는 60km, 농어촌은 100km 이상 움직여야 한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철 심근경색으로 숨진 곽씨의 사망 전날 업무량은 1291건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휴일에 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난해 집배원이 연차 휴가를 사용한 날은 평균 3.4일에 그쳤다.
한국노동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휴가를 갈 수 없는 이유로 '동료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업무량이 많아서' 등을 꼽았다.
심지어 교통사고, 근골격계 질환 등을 앓아도 병가를 쓰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8명에 달했다.
자신이 쉬면 동료들에게 일이 떠넘겨진다는 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하반기 100명을 증원하고 내년까지 주 52시간 이내로 근무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충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이름만 있는 근무시간 단축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집배노조 측은 실제 근무시간을 고려하면 4천 500명가량은 충원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이뤄지는 집배원들의 연장근로를 법으로 제한하는 취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집배원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만큼 정부와 우정본부, 노조를 포함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해법 모색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