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일을 하지만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집배원들.
집배노조에 따르면 2017년에만 12명의 집배원이 세상을 떠났다. 한 달에 두 명 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2명은 교통사고로 숨졌으며, 5명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으로 과로사했다. 그리고 나머지 5명의 집배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업무 스트레스.
가장 최근의 사례로 지난 6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안양시 안양우체국 앞에서 집배원 원모 씨가 인화성 물질을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원씨는 치료를 받았지만 8일 오전 끝내 숨졌다.
경력 21년차의 베테랑 집배원이 자살한 이유는 '업무 스트레스'였다. 실제 원씨가 일하던 안양우체국은 최근 신도시 개발 등으로 물량이 급증해 대표적인 집배원 부족 우체국으로 꼽혔다.
원씨는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밤 10시 반에 퇴근했으며, 물량 급증에도 적정 인력이 증원되지 않아 고충을 토로해왔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결국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이처럼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자살한 집배원은 15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전체 사망 집배원이 70명인 것을 감안하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집배노조는 집배원들의 자살을 열악한 근무 환경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현직 집배원들도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현재 일산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는 집배원 오현암 씨는 지난 11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대한민국 집배원들의 일과를 공개했다.
보통 오전 7시 반 정도에 출근한다고 밝힌 오씨는 더 일찍 출근하는 집배원들은 오전 6시, 7시에 출근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른 출근 시간에 비해 퇴근 시간은 매우 늦었다. 오씨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평균 퇴근 시간은 오후 8시.
집배원들의 퇴근이 늦는 이유는 공동 작업이라고 해서 등기나 택배 같은 걸 각 담당 구역별로 나눠주는 작업을 집배원들이 직접 했기 때문인데, 오씨는 보통 배달 전과 배달 후에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오씨는 또 집배원들이 제때 점심을 챙겨먹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전 9시 반부터 배달을 나가면 끝나는 시간이 보통 오후 5시, 양이 많을 때는 오후 6시라고 밝힌 오씨는 점심시간이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로 정해져 있지만 그 시간에 배달을 하고 배달이 다 끝나는 시간이 오후 4시나 5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이는 오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집배원들이 겪는 일과였다.
여기에 대해 오씨는 '겸배(동료 집배원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그 동료의 일까지 하는 행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겸배를 하게 될 경우 낯선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교통사고 확률이 증가하고 또 업무량도 두 배로 많아져 집배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등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 노동자 운동 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집배원들의 초과 근무 실태를 분석한 결과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55.9시간, 연평균 노동 시간은 2888.5시간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실시한 실시 조사에서도 집배원들은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8시까지 13시간을 일하면서 하루 평균 1천통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토요일에도 격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매주 연장 근로 시간만 13시간이 넘었으며, 택배 업무가 늘면서 업무 강도도 높아졌고 연차휴가 사용 일수도 연평균 2.7일에 그쳤다.
이에 대해 집배노조는 "살인적인 초과 근무가 집배원의 과로사와 과로 자살을 부추긴다"고 주장하며 청와대 인근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또 원씨 사건을 계기로 국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과도한 업무와 집배원들의 죽음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